김대중 정부 시절의 한-일 공동 선언을 아베가 걷어차 버렸다
3자 회담이 열릴 즈음, 이런 호전 흐름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기간 중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남자 문제'를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이다. 그에 대한 결심재판이 21일로 예정되어 있고, 통상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10월 말께 선고가 이뤄진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베 담화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식민지지배에 대한 시각이다. 전쟁에 의한 피해와 고통에 대해서는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면서도 식민지지배가 초래한 고통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아베 담화가 중국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그러한 내용을 거의 담고 있지 않는 배경에는 교전상대국과 식민지는 다르다는 우월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패전 50주년, 60주년에 나온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보다 3배 이상의 긴 분량을 사용하면서도 메시지의 강도는 현저하게 약화시켰다. 담화의 4대 열쇳말로 발표 전부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침략, 식민 지배, 반성, 사죄'는 담화문 구석구석에 배치했으나, 맥락은 이전 담화와 전혀 딴판이었다.
아베담화에도 식민지배와 위안부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일제'라는 가해주체가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주어'가 없다. 만주사변의 배경으로 세계공황을 든 것,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으름장(?)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요컨대 아베담화는 반성의 내용과 형식 모두 낙제점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 문서공개 관련 민관공동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로서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했다. 반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무상 3억 달러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미해결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일본으로부터 청구권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베 담화 못지않게 큰 문제는 중국과 일본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외교적 고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중 관계가 최상이라는 우리 외교라인 사람들의 환상, 박근혜 대통령이 올 들어 한·일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 한·일 관계 개선의 전망도 밝다는 희망사항에 근거한 기대의 결과다. 외교당국자들은 국민들과, 아마도 대통령까지 오도해 온 것 같다.